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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단지

생활문화마을

생활문화마을(生活文化村)은 백제 사비시대의 계층별 주거유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이곳에서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 풍습을 함께 알 수 있다. 귀족가옥은 당시 최고의 벼슬이었던 대좌평 사택지적의 가옥, 군관가옥은 계백장군의 가옥을 연출하였다. 이밖에 중류계급과 서민계급의 가옥을 연출하여 다양한 계층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생활문화마을안내도
  • 계백장군댁(군관주택)
  • 사택지적댁(귀족주택)
  • 휴게소
  • 화장실
  • 건축가, 아비지의 집
  • 의박사, 왕유릉타의 집
  • 오경박사, 단양이의 집
  • 악사, 미마지의 집
  • 금속기술자, 다리의 집
  • 제철 기술자, 탁소의 집
  • 와박사, 마나문노의 집
  • 도공, 신한고귀의 집
  • 공동우물
  • 주조기술자, 인번의 집
  • 불상 조각가, 도리의 집
  • 직조 기술자, 서소의 집
  • 도미의 집

계백장군댁(군관주택)

백제 말기의 대표적 무관인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해오자 계백은 자신의 처자를 베고,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황산벌에서 신라군 5만 명을 맞이하여 다섯 번의 전투에서 네 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계백은 전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충절과 기상은 후대에도 널리 전해지고 있다.

사택지적댁(귀족주택)

백제 귀족의 주택으로, 백제 말기에 대좌평을 역임하였던 사택지적의 가옥을 재현한 곳이다. 대좌평은 제1의 관등인 좌평 중 최고에 해당하여 여덟 개의 큰 귀족 가문 가운데에서도 사(택)씨가 최고였다. 최근 발견된 미륵사 사리봉안기에 의하면 무왕의 왕비도 사택씨였음이 밝혀졌다.

건축가, 아비지의 집

백제의 건축가인 아비지의 집을 재현한 곳으로, 침소와 부엌 등 생활공간인 주옥과 작업공간으로 구성하였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아비지는 신라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에 참여하였다 한다. 이 무렵 백제에서는 미륵사 등 거대 사찰이 건축되었는데, 아비지는 이 같이 우수한 백제의 건축기술을 신라에 전해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의박사, 왕유릉타의 집

의박사 왕유릉타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침실, 안방, 부엌 등 생활공간과 각종 의료용품이 전시된 진찰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왕유릉타는 554년 일본에 파견되어 의약기술을 전파한 인물로, 백제 22부사 중 약부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약부에서는 백성들의 치료와 약재를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경박사, 단양이의 집

무령왕 13년(513) 일본에 파견되어 유학을 비롯한 학문을 전파한 오경박사 단양이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오경박사는 『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의 5경에 능통한 사람으로, 단양이의 학문적 소양을 알 수 있다. 당시 백제는 일본의 요청에 의해 수시로 박사를 파견하여 학문과 문화를 전파해주었다.

악사, 미마지의 집

무왕 13년(612) 일본에 파견되어 백제의 음악과 춤을 전수한 악사 미마지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본래 기악무는 부처를 공양하고, 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가무이다. 일본에 전수된 기악은 당대 절에서 연주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어 백제의 음악과 무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기악무에 사용된 기악탈은 도다이지(東大寺) 등 여러 절에 보관되어 있다.

금속기술자, 다리의 집

금속기술자 다리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제팔찌 안쪽에는 520년 다리라는 인물이 왕비를 위하여 팔찌를 제작하였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리와 같이 우수한 백제의 금속공예 기술자들이 금동대향로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과 같은 빼어난 금속공예품을 제작하였다.

제철 기술자, 탁소의 집

『고사기(古事記)』에 근초고왕 대, 일본으로 파견되어 철생산 기술을 전파하였다고 전해지는 제철 기술자 탁소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에 의하면 백제는 일찍부터 철광에서 양질의 철을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제철기술을 보유하였음이 확인된다. 칠지도가 바로 그 근거라 할 수 있다.

와박사, 마나문노의 집

위덕왕 35년(588) 일본에 파견되어 기와와 전돌 제작기술을 전한 와박사 마나문노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고대의 기와나 전돌은 격이 높은 왕궁이나 사찰에 사용되던 고급 건축재료로, 국가와 왕실에서 엄격하게 통제하여 생산하였다. 마나문노의 집에서는 그의 평소 생활하던 모습과 와박사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도공, 신한고귀의 집

개로왕 대에 일본으로 파견되어 토기제작 기술을 전한 도공 신한고귀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백제는 한성기에 토기 제작기술이 발전하여 실용성이 가미된 토기들이 제작되었다. 사비기에는 다양한 용도의 토기가 제작되었으며, 점차 규격화되고 전문화되었다. 신한고귀의 존재는 백제에 토기를 생산하던 전문가 층이 존재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주조기술자, 인번의 집

5세기를 전후한 무렵 일본에 파견되어 술을 빚는 법을 전해준 주조기술자 인번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고사기(古事記)』에는 응신천황 때 건너온 인번이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를 빚었으며, 후에 그를 주신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를 통해 백제인들이 술을 빚어 즐겨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불상 조각가, 도리의 집

백제의 대표적인 불상 조각가인 도리의 집을 재현한 곳으로, 백제 공예품의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도리는 일본의 초기 불교문화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제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 나라에 소재한 호류지(法隆寺)에 도리가 제작한 약사여래좌상과 금동석가삼존상의 광배가 남아있다.

직조 기술자, 서소의 집

5세기를 전후한 시기 일본에 파견되어 직조기술을 전한 서소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고사기(古事記)』에는 응신천황 때 건너온 서소가 직조기술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이를 통해 당시 백제가 다양한 직물과 우수한 직조기술을 보유하였음을 살필 수 있다.